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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say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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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보 기 |
 작 성 자 |
신산반 |
| 제 목 |
방석, 언덕길 그리고 포장마차(옮긴글) |
| 등록일 |
2004-10-28 |
조 회 |
2426 |
| 내 용 |
자전거와 방석
퇴근하고 집에 오니 아내가 괜히 웃고 있었다. 아내는 뭔가 말하고 싶어 하는 눈빛이 역력했다. 옷을 갈아입고, 대충 씻은 뒤 밥상에 앉으니 아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운을 뗐다.
“글쎄, 우리 한결이가 말이에요.”
아내가 직장에서 퇴근하려는데, 아들이 전화를 했단다. 아들은 자전거를 타고 와서 제 엄마 직장 앞에서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몸무게가 제 엄마와 비슷할 정도로 불쑥 자란 12살짜리 아들 녀석은 가끔 자전거로 제 엄마를 태워 오곤 했다. 아내도 20분 넘게 걸리는 귀가 길을 혼자 걸어야 하니 아들의 배려가 반가웠을 것이다. 그래서 가끔 피곤한 날이면 녀석의 호의를 사양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말이에요.”
아내는 바짝 다가앉으며 말했다. 직장 문을 나서니 약속한대로 아들이 자전거를 대기 해놓고 서 있더란다. 그런데 아들은 보통 때와는 다르게 아내가 다가가도 출발할 자세를 취하지 않고 '씨익' 웃더란다. 녀석은 자전거 뒷자리에 싣고 온 검은 비닐봉지를 부시럭거리며 무언가를 꺼냈다. 뭔가 싶어서 가만히 보니 집에서 쓰던 방석이었단다.
녀석은 그 방석을 반으로 포개 접더니, 자전거 뒷자리 의자에 깔아주더란다. 철제에 덜컹거릴 엄마 엉덩이를 위한 속 깊은 서비스였다. 아내는 너무 편하고 좋아 어떻게 집에 왔는지 모를 정도였단다.
참았던 말을 숨 가쁘게 끝낸 아내는 내 반응과는 상관없이 이내 아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텔레비전 화면에 넋을 놓고 있는 녀석을 환한 미소로 바라보았다. 아내는 여전히 기분 좋게 흔들리는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있는 듯, 감흥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비질하는 아이
지난 수요일 밤 9시쯤이었다.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발갛게 달아오른 술기운을 가을바람에 식히며 흥얼흥얼하며 걷기 딱 좋은 날씨였다. 군데군데 문 닫은 시장을 빠져 나와 공용주차장을 지날 때였다. 그곳에서 우연히 포장마차를 보았다. 막걸리와 두부를 사러 자주 지나던 길인데, 그 자리에서 포장마차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새로 생긴 것 같았다.
하지만 그곳은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속칭 '목 좋은 자리'는 아니었다. 시장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공용주차장 한 모퉁이라서 눈에도 잘 띄지 않았다. 내가 그 포장마차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안에서 새어 나온 불빛 때문이었다. 혼자서 마셔도 별로 궁상스럽지 않을 것 같은 포장마차였다. 그래서 혹시 간단한 안주와 소주를 판다면 가볍게 2차 즐길 셈이었다.
그러나 얼핏보니 포장마차는 튀김과 떡볶이 등을 팔고 있는 것 같았다. 늦은 시간 보충수업을 끝내고 귀가하는 학생들이 허기를 채울만한 곳일 뿐, 중년 남자에게는 해당사항 없는 먹을거리였다. 그래서 그냥 지나치려는데 한 아이가 내 눈을 잡아끌었다.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그 아이는 빗자루를 들고 포장마차 앞을 열심히 쓸고 있었다.
무심코 지나가다가 발길을 멈추고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인적이 뜸한 늦은 밤 포장마차, 그 앞에서 쓱쓱 싹싹 비질을 하고 있는 아이 모습은 무척 생경하면서도 어딘가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내 어린시절, 젊었던 엄마와 가파른 언덕길을 올랐던 그 때가 떠올랐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일을 하시던 엄마는 늦은 밤 그 언덕길을 올라 집으로 오셨다. 유난히 가파르고 지루한 길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그 길을 따라 집까지 오면 숨이 목까지 찰 만큼 힘들었다. 밤이면 달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동네 언덕길이었다.
일찍 잠들지 않고, 엄마를 기다리던 어느 날 밤이었다. 나는 담 너머로 가풀막을 내려다보며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가물가물 졸음이 올 무렵, 비탈을 올라오는 엄마가 보였다. 나는 잽싸게 언덕길을 달려 내려갔다. 엄마는 환히 웃으며 내 뒷꼭지를 쓰다듬어 주셨다.
나는 엄마 뒤쪽으로 가서 당신의 허리께를 두 손으로 밀어 주었다. 밀리듯 언덕길을 오르는 엄마 걸음걸이가 한결 가벼워 보였다. 엄마는 "어이구, 우리 새끼 힘도 세구나"하시며 환하게 웃으셨다.
튀김 2천원 어치를 샀다
그 생생한 추억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 하여 내 발길은 어느새 포장마차를 향하고 있었다. 예상한대로 포장마차 안에서는 젊은 엄마가 고무장갑을 끼고, 뒷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아들이 참 효잡니다."
어묵을 집어들며 대뜸 말을 건넸다. 아주머니는 손님의 느닷없는 인사말에 잠시 의아하더니 이내 눈치를 채고, 밖에 있는 아들을 바라보았다.
"예 착합니더. 그런데 겨우 고것 한다고 낑낑대내요."
아주머니는 괜한 투정으로 겸손함을 내보였지만 밝고 건강한 목소리였다. 노곤한 하루를 마치고 이제 곧 편히 쉴 것이라는 들뜬 기분만은 아닌 것 같았다. 낯선 손님에 대해 신경쓰지 않고, 빗질에 여념이 없는 아이에게 물었다.
"몇 학년이고?"
그런데 아이는 쑥스러운 듯 빙긋 웃고 비질하였다. 아주머니가 대신 대답했다.
"초등학교 4학년입니더."
"이리 와서 오뎅 하나 묵어라."
참, 어울리지 않는 제의였지만 내가 그 아이에게 달리 친근함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는 '괜찮아요' 하더니 슬금슬금 포장마차 뒤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엉거주춤하게 어묵 하나를 들고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아주머니가 대신 대답을 했다.
"사내자슥이 부끄럼이 많은 편입니더."
아이가 안 보이니까, 내가 더욱 쑥스러웠다. 그래서 양손에 든 어묵을 우걱우걱 먹으면서 '아까 그 아이가 장남이냐?', '댁은 여기서 가까우냐?', '엄마 일 거드는 아이 모습 참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는 등 인사치레를 건넸다.
아주머니는 딸 하나, 아들 하나이니 그 아이가 장남인 셈이고, 포장마차 옆에 있는 서민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했다. 아주머니가 가리키는 서민아파트에는 집집마다 불이 환하게 켜 져 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어묵 두 개를 다 먹고 국물을 홀짝거리며 기다렸지만, 아이는 어디로 숨었는지 나타나지 않았다. 어묵 두 개만 먹고, 그냥 가기 멋쩍어서 튀김 2천원어치 싸 달라고 하였다. 아주머니는 마지막 남은 것이라면서 팔고 남은 고추튀김까지 모두 다 싸주었다. 2천원 어치를 담은 튀김 봉지가 제법 묵직했다.
나는 계산을 치르고 나오며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아까 그 손님이 너 착하다고 칭찬하더라”는 말을 아들에게 전해줄 것을 부탁했다. 아주머니는 “꼭 그렇게 하겠다”며 웃었다. 젊고 건강했던 내 엄마도 오래 전에 그렇게 웃으셨다. 그 때 기억이 선연히 되살아 난다. 젊은 내 엄마의 미소.
그날 별로 좋아하지 않는 튀김을 샀다. 그리고 가방에 튀김을 불룩하게 넣고 집으로 향했다. 왠지 고추튀김이 맛있을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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