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생지 탐방기를 써주세요."

"내가 쓸 게 어딨어."

"아~ 그 호복륜 있잖아요."

발행인 그 친구가 그 호복륜 자생지탐방기를 써달랜다.

도대체 뭣에 쓸려고...

어쨋든 난에 관해 모든 것이 일천한 내게도 호복륜에 대해서는

자생지 탐방기를 쓸 만하다.

지금은 세력이 떨어져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호복륜.

97년 1월 4일.

내게는 난생 처음이라 날짜도 생생하다.

한모, 황모, 김모 2명, 그리고 나 5명

진도 자생지 탐방길에 올랐다.

생에 처음으로 진도에 가다니...

난이 아니고서야 어디 진도엘 가보겠는가?

밤이 채 깊어지기도 전에 우리 일행은 무쏘에 몸을 싣고

경부와 호남고속도로를 질주했다.

주위는 캄캄하여 어디가 어딘지 구분은 되지 않았으나

점차 날이 밝아오면서

아! 여기가 씻김굿,진돗개,명창 신영희씨가 태어난 곳

진도임을 알 수 있었다.

진도대교를 건너면서 얼마전까지도 서울사람 행세를 했던

김모씨를 대동하고 아침 해장을 마친뒤

진도 산행에 들어갔다.

목적지로 이동하면서 본 진도의 산은 여느 산과 다를 바 없었지만

어느 산은 솔잎 혹파리,제선충 등으로 소나무가 고사하여 거의 민둥산인 채로 있었다.

저런 산에도 난이 있을까?

글세다.

그 민둥산 탓일까!

첫날은 공탕이었다.

당일 자생지 탐방은 여러번 경험이 있었지만 1박을 하는 자생지 탐방은 처음이라

내 스스로도 사뭇 기대가 컸던 모양이다.

하다못해

XX나부랭이라도(산반이 들으면 속상하므로) 캤으면 덜서운했을텐데...

산을 내려오면서 "공탕이 무서워요"를 연발했고,

그날 여관방에서도

잠들 때까지도 "공탕이 무서워요"를 연발했다.

어떤 여가수의 노래 "밤이 무서워요"를 표절한 것이지만

나의 이 한마디는 주위를 웃기기도 했지만 나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했다.

그래, 내일은 공탕은 말아야지...

그 다음날!

진도에서 숏 타임 자생지탐방을 한다음 해남으로 나가잔다.

그냥 나갔으면 좋으련만 일행은 그래도 진도가 좋은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또 공탕이었다.

정말 공탕이 무서웠다.

다들 공탕이 무서웠는지도 모른다.

공탕이 너무 무서워서...

그 공탕 공포에 질려서...

서로 눈만 껌뻑이면서 해남으로 갔다.

해남의 그 산,

자그마한 마을을 병풍으로 감싼 듯 산은 그리 높지도 않았고, 마치 어머니의 품 속처럼 따뜻하게만 느껴졌다.

전투식량(빵과 쵸콜릿)을 챙겨 넣고 산에 올랐다.

처음에는 여기저기 일행들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점차 내 귀에는 나의 발자국 소리만 남게 되었다.

각자 흩어진 모양이다.

벌써 우리 보다 앞서간 흔적을 곳곳에서 발견하면서 그 무서운 공탕 공포가

순간순간 뇌리를 스치면서도 애써 태연한척 여기저기를 살펴보면서 좌에서 우로 이동했다.

얼마쯤 왔을까.

소나무와 잡목이 혼재되어 있는곳, 배낭 메고 다니기에는

너무나 힘든 곳,

그 곳에서 그 무서운 공탕을 물리쳐줄 원군을 찾고 있는 나!

앞으로 갈 수도, 뒤로 갈 수도, 옆으로 갈 수도 없는

그런 곳에서

억지로 몸을 틀어 나오는 순간!

어른 팔뚝만한 소나무를 의지한채 외롭게

나를 기다려준 그...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눈에도 난인가 싶었다.

정말 난이었다.

배골 깊숙히 2미리미터는 족히 되는 선명한 호, 모두 세 잎장,

전부 호였다.

처음 내눈에는...

누가 우황 청심환이라도 먹여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심상치 않은 심장박동도 아랑곳 하지 않고 손 끝으로 호를 따라갔다.

아니 이런 잎 끝으로 새는 것이 아닌가. 다른 잎장도,

또 다른 잎장도...

통상 호가 잎 끝으로 빠지면 발호 또는 봉호라고 하여

유전성이 희박하다고 하는데...

이번엔 나의 가슴은 실망으로 가득했다.

공탕은 면했지만 왜 하필이면...

그것이라도 어떠냐 하겠지만 나의 마음은 그게 아니다.

처음부터 기대가 컸을까?

다시 한번 보자!

호가 뚫고 나간 곳을...

이런, 이런 ...

흘러나간 호는 마치 천지 못이 양쪽으로 흘러 압록강과

두만강을 이루듯

잎 가장자리 양쪽으로 흐르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

이것은 무엇인가?

호복륜!

캐고보니 벌브부터 호가 올라 잎 양옆으로 다시 호의 물결이...

조그만 벌브 두 개에 한촉 세잎장.

"호복륜 어떻게 됐어?"

"호복륜 잘커?"

지금도 간간히 안부를 묻지만 나는 대답을 못한다.

세력은 떨어졌고 산채 촉은 벌써 없어진지 오래고...

지금은 겨우 한촉...

그해 봄 신아를 받아 지금은 속 잎장에서 그 화려했던 흔적을 볼 수 있는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이제부터 제 구실을 하겠지 하는 생각에...